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내 공부방에서 책이며 잡지들이 하나씩 사라졌습니다
그러다가 잊을만 하면 돌아오곤 했습니다
"어? 이게 또 어디로 사라졌어 나 참....."
이번엔 새로 산 휴대폰 사용 설명서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엄마! "
"또 뭐? 뭔지 몰라도 난 아니다"
엄마는 또 이번에는 뭐냐는 투였습니다 동생도 똑같은 반응이었습니다
"나두야 누나"
엄마도 동생도 본 적이 없다면 설명서에 발이라도 달린 걸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이것저것 눌러보고 만져보고 시행착오를 해가며 사용법을 터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밤이 깊었을 때 물이라도 마실까 해서 거실로 나갔는데
할머니 방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문이 열려 있어서 살짝 들여다보았습니다
"할머니"
자그맣게 불러 보았지만 할머니는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곤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우리 할머니 잘도 주무시네"
이불을 제대로 덮어 드리려고 할머니 방에 들어간 나는 불을 끄고 나오려다
우연히 할머니의 경대 위를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찾던 휴대폰 설명서가 거기 있었습니다
"아니 이게 왜 여기 있지?"
할머니도 참, 하며 설명서를 잡으려던 나는 그만 코끝이 찡했습니다
공책에 빼곡이 설명서를 한 줄 한 줄 따라 적은 할머니의 글씨!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 곁에서 3 년 동안이나 병수발을 든 할머니는
할아버지 당신 자식조차 알아보지 못한 채 숨을 거두신 후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닥칠 지 모른다며
늘 걱정 하셨습니다 입버릇 처럼 자식들 앞에 추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다시던 할머니,
할머닌 언젠가 뉴스에서 본 치매 예방법대로 밤마다 이 책 저 책 가져다가 글씨 쓰기를 하시며
불안한 가슴을 진정시키셨던 것입니다
나는 설명서를 읽던 자리에 그대로 둔 뒤 할머니의 주름진 손을 가만히 잡아보았습니다
내일 저녁엔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동화책을 몇 권 사와야겠다 생각하며 말입니다
- TV 동화 행복한 세상에서 (방송작가 이미애) -
*** 나이가 들어 가면서 왠지 걱정이 앞선다
깜빡 깜빡 할 때가 자꾸만 늘어 간다
집에 전화를 할려고 핸드 폰을 들었는데
순간 집 전화 번호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참이나 걸린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 뿐인가
남편님하고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아이들에게 전화를 하라고 해서
아 뿔사 또 기억이 나지 않고
그러다가 겨우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건 것이 옆에 타고 있는 남편의 핸드폰에다
여보세요 하고 말을 한다
할머니처럼 야간 학습이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기억이 희미하기 전에 책을 더 많이 읽어야 되려나 보다
쓰는 연습을 많이 해야 되나 읽는 연습을 많이 해야 되나
바람은 무지 부는 데 공 처럼 걱정이 둥글어 지기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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